교실 이야기
면도하지 않기로 했다. 면도하기 위해 가져갈 짐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고생한 티를 내야겠다는 얍삽한(?) 마음도 들어서였다. 우땅즈를 준비하는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 아주 세심하게 준비하느라 분주하시고 또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나만 빈둥거리며 여유 있게 설레는 마음으로 화요일만 기다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것과 우땅즈가 처음이라는 이유로 어렵고 손 가는 일은 모두 다영 선생님의 차지가 된 까닭이다.
우땅즈 기간에도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또 한 명의 밀알이 되어서 같이 다니고 놀아주는 일 정도였으니 2024년 우땅즈 14두레는 인솔 교사 1인과 17명의 밀알로 구성되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러니 말끔한 얼굴로 돌아가면 이 특급 비밀이 탄로 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시츄에이숑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눈총도 총인지라 자꾸 받다 보면 죽을 수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처음엔 우리 밀알들이 뭔가 배울 수 있도록 돕고 또 밀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인솔 교사의 책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솔 교사가 아닌 밀알이 되어보니 결국 배움의 주체는 우리 밀알들이고 가르침의 주체는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과 사람들이 구성한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표현으로 꼰대에서 잼민이가 되는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이 깨달음이 '일사병 걸린 김군'들을 더 잘 알게 되고 친해진 것과 함께 나의 첫 우땅즈의 최대 수확이다.
3박 4일을 같이 생활하며 밀알들의 솔직한 모습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새롭고 재미있었다. 자신의 단점마저 여과 없이 보여주는 그들의 솔직함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직도 놓지 못하고 움켜쥔 나의 방어기제가 부끄럽다. 우땅즈를 통해 밀알들에게 배운 귀한 지혜다.
우땅즈 기간에 친우에게 받은 메시지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찰리 메카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네가 속속들이 알게 될까 봐 때로는 걱정이 돼" 소년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네가 특별하길 요구하지 않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사람이 특별하건 아니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바란다. 나 또한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보일 수 있기를.,,
"승민, 소은, 해수, 희민, 지우, 준희, 산, 다임, 경찬, 영환, 하연, 시훈, 수아, 원준, 서연, 소유야, 너희 모두를 사랑해. 다영샘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순서를 인도하시고 모든 순간을 지켜주신 하나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110 | 11월 - 씨뿌리는 자 - 변영애 선생님(중고등, 미술) | 관리자 | 2024-11-29 | 114 |
109 | 11월 - 밀알이 되어가다 - 이기옥선생님(초등, 영어) | 관리자 | 2024-11-29 | 98 |
108 | 10월 - 중국해외이동배움, 최고의 선물 - 박영초선생님(중고등, 수학) | 관리자 | 2024-10-31 | 107 |
107 | 10월 -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 - 임은비 선생님(중고등, 영어) | 관리자 | 2024-10-31 | 96 |
106 | 9월 - 입학설명회 기도문 - 서광 선생님(중고등, 과학) | 관리자 | 2024-09-30 | 98 |
105 | 9월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김연희 선생님(고등,우리말우리글) | 관리자 | 2024-09-30 | 99 |
104 | 7,8월 - 새벽에 말씀하시다 - 이기옥선생님(초등, 영어) | 관리자 | 2024-08-30 | 135 |
103 | 6월 - 나에게 우땅즈란 - 정진우 선생님 (연구소장) | 관리자 | 2024-07-01 | 153 |
102 | 6월 - 밀알두레의 상징 : 우땅즈 - 김백수 선생님(중고등, 영어) | 관리자 | 2024-07-01 | 155 |
101 | 6월 - 익산으로 떠난 두레 : 이야기 - 박영초(중고등, 수학) | 관리자 | 2024-07-01 | 158 |
100 | 5월 - 면도하지 않기로 했다 - 이승재 선생님(중고등, 과학) | 관리자 | 2024-06-03 | 153 |
99 | 5월 - 함께 걷기, 동행 - 박영초 선생님(중등, 수셈공) | 관리자 | 2024-06-03 | 176 |
98 | 5월 - 분주함을 가장한 외면(하나님의 은혜) - 하지혜선생님(교육지원실, 돌봄) | 관리자 | 2024-06-03 | 169 |
97 | 4월 - 소통을 갈구하는 시대 - 김병철(중등교감, 우리말 우리글) | 관리자 | 2024-04-30 | 172 |
96 | 4월 - 따뜻한 바람의 흔적들 - 임미리선생님(중고등, 소명) | 관리자 | 2024-04-30 | 19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