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나서다
밀알두레 교육운동의 시작을 위해
밀알두레 교육운동의 시작을 위해 2010년 10월, 정기원 교장선생님과 20여 분의 선생님, 그리고 50여 가정 90여 명의 학생들이 뜻을 모아 쉽지 않은 교육의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기거할 땅도, 건물도, 물질도, 어떠한 공간도 없는 그야말로 광야에 내던져진 존재인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신념과 확신은 있었지만 복잡하게 꼬여있는 환경의 벽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른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처음 움직임과 역사적인 개교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은 직업군별로 삼삼오오 역할을 나눠 학 교부지와 건물, 재정 및 정관, 홍보와 급식 등의 문제들을 위한 해결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교사들은 교육 커리큘럼과 학사일정 등에 시간을 할애해 나갔다. 가장 먼저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는 두달 여 동안 구리시와 남양주시 일대의 30여 곳을 발품을 팔며 불철주야 후보지를 탐방한 끝에 2010년 12월 남양주 이패동의 현 부지를 최종 부지로 선정하여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밀알두레 교육공동체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계약금은 무사히 치렀지만 중도금과 잔금의 처리 앞에 또다시 하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뜻이 같은 학부모 14인이 모여 5억여원을 출현하기 시작했고, 연이어 선생님들과 일부 학부모들의 동참과 은행융자를 포함하여 18억원이라는 부지대금을 확보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 사이 학교를 위한 운영진이 꾸려졌고, 내년도 학사운영을 위한 임시거처로 남양주시 호평에 있는 예일비전스쿨의 공간을 임대하기에 이르렀다. 마땅한 재정도, 비품도 하나 없었지만 학원시설은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또한 구리와 남양주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6차례의 교육설명회를 개최하여 학교의 홍보와 신편입생의 모집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011년 3월 1일 역사적인 개교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 행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축하사절단이 내방했고, 중국의 만방학교, 남양주시의 정계 및 의회 관계자들과 교육계 인사들의 참석으로 식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그 사이 학교를 위한 운영진이 꾸려졌고, 내년도 학사운영을 위한 임시거처로 남양주시 호평에 있는 예일비전스쿨의 공간을 임대하기에 이르렀다. 마땅한 재정도, 비품도 하나 없었지만 학원시설은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또한 구리와 남양주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6차례의 교육설명회를 개최하여 학교의 홍보와 신편입생의 모집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011년 3월 1일 역사적인 개교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 행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축하사절단이 내방했고, 중국의 만방학교, 남양주시의 정계 및 의회 관계자들과 교육계 인사들의 참석으로 식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의지하며
건축의 삽을 뜨다
밀알두레 교육공동체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학교건축을 위한 TFT를 꾸리고 교사를 위한 설계와 건축을 논의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학부모들의 직업적 달란트를 활용하여 아이들과 학교를 위한 최적의 디자인과 업체를 선정 하고자 하였다. 겨울캠프를 통해 모든 가족의 의견을 모아 최종 시안을 결정한 뒤, 공사수행방법과 인허가관련 남양주시 유관부서와의 협의에 들어갔다. 교육연구시설로 인허가서류를 접수하였지만 비인가 시설로서는 현재의 법률적인 제약 앞에 부딪혀 근린생활시설로 재접수 한 뒤 2011년 4월 13일 인허가 완료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건축TFT는 시공사 선정방법과 공사대금의 지급방안을 놓고 협의를 계속해 나갔다. 문제는 재정적 부분이었다. 처음 부지 대금의 확보에 있어 대부분이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 완료가 되었으나 공사대금의 마련에는 더이상 학부모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학급 정원이 미달한 상태에서 임금의 최소화를 자원하여 시행 하였고 학교 재정은 그야말로 초긴축 예산을 세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는 학부모들의 섬김과 희생의 모습을 보고 등록금의 동결을 제시하였다. 학부모들은 별도로 ‘한평기부운동'을 추진해 나갔고, 후원연구모임을 조직하여 외부의 도움을 강구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1년 4월 23일, 맨땅 430평,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지만, 하나님이 세우실 학교를 본다. 작은 의자, 작은 무대, 작은 플랜카드가 펄럭였지만, 하나님은 밀알두레학교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밀알두레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꿈을 펼쳐 가실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을 모아 예배했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하얀, 파란 풍선을 하늘에 날 렸다. 예쁜 풍경이었다.
건축TFT는 시공사 선정방법과 공사대금의 지급방안을 놓고 협의를 계속해 나갔다. 문제는 재정적 부분이었다. 처음 부지 대금의 확보에 있어 대부분이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 완료가 되었으나 공사대금의 마련에는 더이상 학부모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학급 정원이 미달한 상태에서 임금의 최소화를 자원하여 시행 하였고 학교 재정은 그야말로 초긴축 예산을 세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는 학부모들의 섬김과 희생의 모습을 보고 등록금의 동결을 제시하였다. 학부모들은 별도로 ‘한평기부운동'을 추진해 나갔고, 후원연구모임을 조직하여 외부의 도움을 강구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으기 시작했다.
드디어 2011년 4월 23일, 맨땅 430평,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지만, 하나님이 세우실 학교를 본다. 작은 의자, 작은 무대, 작은 플랜카드가 펄럭였지만, 하나님은 밀알두레학교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밀알두레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꿈을 펼쳐 가실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을 모아 예배했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의 마음을 담아 하얀, 파란 풍선을 하늘에 날 렸다. 예쁜 풍경이었다.
건축의 시작과 다가 온 시련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 마음을 받아준 건설회사가 있었다. 명국건설과 학교건축이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은 25일 동안 거의 내내 비가 내리기도 했다. 난공사, 부실의 위험, 자금조달의 어려움, 관계의 문제 등등 계속해서 난관이 찾아왔다. 현재는 난관이고 장애물이지만 결국 이 모든 상황들이 밀알두레학교 완공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기도로 나아갔다.
그해 여름은 25일 동안 거의 내내 비가 내리기도 했다. 난공사, 부실의 위험, 자금조달의 어려움, 관계의 문제 등등 계속해서 난관이 찾아왔다. 현재는 난관이고 장애물이지만 결국 이 모든 상황들이 밀알두레학교 완공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기도로 나아갔다.
매달 계속되는 건축재정의 어려움 속에 우리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끊어서 하나은행으로부터 10억 대출을 신청했다. 3~4일이면 된다고 했는데 20여일이 넘도록 심사를 하더니 '대출불가'라고 통보가 왔다. 얼마나 낙심되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던지... 그러나 3일이 지난 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대출이 이뤄졌더라면 학교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막아 주셨던 것이다.
십시일반! 우리는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모았다. 학생들의 저금통에서부터 어머니회의 바자회, 드림콘서트, 그리고 장롱 속 돌반지 모으기 운동까지... 재정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 즉 우리의 진(眞)을 진(盡)했다. 그런데 건설을 맡았던 회사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능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마침내 2층 옥상 콘크리트 타설을 앞두고...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은 해를 넘겼고, 무려 11개월 동안 건축은 녹이 슬어가며 한발자욱도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어진 꿈을 다시 일으켜야만 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무겁고 지친 무릎을 세우기 시작했다. 건축위원회는 건축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결국 2012년 8월, 거의 1년 동안 멈추어져 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2층 옥상 콘크리트가 타설되던 날, 철근과 나무를 향해 쏟아지는 콘크리트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어지지 않고 쏟아지길 기도했다.
학부모와 교사들을 중심으로 매일 오후 6시 학교 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공사 현장에서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지만, 밀알가족들은 기어코 현장을 고집했다. 돌과 콘크리트, 나무와 못, 바닥과 기둥과 모퉁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간절함이 그대로 기도가 되었다.
십시일반! 우리는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모았다. 학생들의 저금통에서부터 어머니회의 바자회, 드림콘서트, 그리고 장롱 속 돌반지 모으기 운동까지... 재정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 즉 우리의 진(眞)을 진(盡)했다. 그런데 건설을 맡았던 회사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능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마침내 2층 옥상 콘크리트 타설을 앞두고...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은 해를 넘겼고, 무려 11개월 동안 건축은 녹이 슬어가며 한발자욱도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어진 꿈을 다시 일으켜야만 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무겁고 지친 무릎을 세우기 시작했다. 건축위원회는 건축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결국 2012년 8월, 거의 1년 동안 멈추어져 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2층 옥상 콘크리트가 타설되던 날, 철근과 나무를 향해 쏟아지는 콘크리트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어지지 않고 쏟아지길 기도했다.
학부모와 교사들을 중심으로 매일 오후 6시 학교 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공사 현장에서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할 수 있지만, 밀알가족들은 기어코 현장을 고집했다. 돌과 콘크리트, 나무와 못, 바닥과 기둥과 모퉁이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간절함이 그대로 기도가 되었다.
감격적인 준공과 교육의 가나안 입성
'드디어! 드디어'란 표현 외에 어떤 표현이 있을까? 드디어 준공을 받기 위한 모든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2013년 2월. 물론 아직 군데군데 보완하고, 보충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준공허가'를 받기위한 행정상의 공사는 다 준비된 것이었다. 우리 는 준비된 서류를 제출했고, 허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학교는 온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함께 모여 그 추운 겨울 한파 속에 구리시 수택동의 모든 짐들을 임시 장소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준공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었다. 행정 담당자로부터는 이상하리만치 답신이 오지 않았다. 계속 재촉을 해 보았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기한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담당자를 직접 대면하여 명확한 이유를 듣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준공 준비의 진짜 '준비 완료가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전 설계사 와 CM, 명국건설을 다시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밀알두레학교가 진정 하나님의 학교로 거듭나기를 원 하셨던 것임을 알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했다.
하지만 준공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었다. 행정 담당자로부터는 이상하리만치 답신이 오지 않았다. 계속 재촉을 해 보았지만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기한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담당자를 직접 대면하여 명확한 이유를 듣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준공 준비의 진짜 '준비 완료가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전 설계사 와 CM, 명국건설을 다시 만났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밀알두레학교가 진정 하나님의 학교로 거듭나기를 원 하셨던 것임을 알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했다.
최종 준공 승인은 2013년 3월 4일, 입학식 및 개교기념예배 1시간 전인 오후 1시에 떨어졌다. 숨이 막히면서도 절박함과 절묘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밀알 두레학교 지하, 길벗채플에서 시작된 2시 입학예배는 그래서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순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을 확인하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예수님 가르침 그대로 밀알두레학교가 세워진 감격적인 날이었다. 모진 2년여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교육의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날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와 은혜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